"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날씨가 많이 풀리긴 했지만, 남자의 얼굴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때가 많이 묻은 검은색 점퍼, 상표의 흔적마저 사라진 황갈색 운동화.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거칠은 머리카락, 그리고 말라붙은 광대뼈의 모습. 초라하게 구겨진 배낭과 덥수룩한 수염까지.

낡은 중국집 앞에서 꽤 긴 시간을 서성거린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찾아온 봄을 느끼기 위해 나왔던 나에게 남자가 그리고 있는 풍경은 추운 겨울이었다.

 

누군가 중국집의 문을 박차고 나왔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무엇이 그리 초조하고 불안한지 앉아 있는 남자는 다리를 계속 떨며 앉아 있다. 주인 인듯한 남자가 무언가를 이야기 하자 남자는 때묻은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주인에게 준다. 돈을 확인한 주인이 그제서야 물을 한잔 갖다 준다. 물을 마시면서도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불안한 듯 계속 다리를 떤다.

 


# 1

누군가는 우리 사회를 승자의 자만감이 패자를 유린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좀 더 나은 위치에서 출발한 불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오만한 사람들이 패자의 자존감 마저 빼앗아 가는 사회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의 증가와 높은 자살율을 근거로 내세웠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달빛 요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참 먹먹했다. 살아서 부르던 그의 노래에는 무심했지만 그가 떠난뒤 남겨 놓은 노랫말들은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스스로를 마이너리그라고 불렀던, 당당했던 그도 생활고와 무관심은 넘기 힘든 고통이었다. 밥과 김치를 먹고 싶었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도,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이다. 꿈을 펼치라고 세상은 이야기 하지만 그 꿈을 펼칠만한 자그마한 공간과 배려조차 허락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약자와 패자로 구분되는 세상 속에서 올 겨울은 유독 추웠다. 남의 일이라고 하기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풍경들이 너무도 선명하다. 마음 마저 가난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찌 봄을 기다리며 희망가를 부를수 있을지 모르겠다. 봄을 재촉하는 햇살은 따사롭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 2

돌아오는 길에 남자를 다시 보았다.

남자는 붉은 짬뽕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쾡한 눈에 얼마간의 생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천천히 짬뽕 국물을 마시면서도 여전히 다리는 떨고 있었다. 남자는 마지막 몇 모금을 남기고 허리를 폈다. 남자의 낡은 점퍼도 함께 펴졌다. 물은 한모금 마시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다시 꺼냈다. 구견진 지폐 더미에서 몇장의 돈을 꺼내 탁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 보며 온기를 느끼는 듯 했다.

 

한참을 그렇게 허리를 펴고 가만히 있었다. 무언가를 먹었다는 포만감이 좋은지, 아니면 소화가 안되어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그릇을 들고 남은 국물을 입에 넣었다. 식은 짬뽕 국물이 목덜미로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으깨어진 엄지손톱이 보이고 남자의 핏발선 눈동자가 보였다. 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추운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봄은 다시 찾아 오고 있다.

세상은 다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진실은 아직도 추운 겨울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가, 짬뽕국물 이야기  (15) 2011.02.23
사랑 하나, 한숨 한모금.  (11) 2009.08.04
늙은 아들의 소원.  (6) 2009.03.29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6) 2009.03.19

Comment +15

  • 승자가 아니면 패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보다 남들과의 비교되는 인생을 생각하여야 하고, 남이 먹으면 나는 못먹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배되어야 하니까요...

    • 세상의 현인들은, 삶은 승패가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시죠.^^
      짬뽕국물을 먹으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아저씨의 눈빛이 아직도 선합니다.
      삶은 과연 아름다울까요.

  • 승자가 독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
    이 사회는 정글인 것이죠.
    경쟁에서 탈락하면 그게 곧 죽어 싸다는 뜻이 되는 한
    이 사회는 강자만 살아남는 밀림인 것이죠.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도,
    모두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는 요원한 걸까요.

    • 요즘, 인간다운 삶이 무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인간은 참 감정적인 동물인데 말이죠.
      울컥 하고 눈물이 날뻔한 장면이었습니다..
      꽤나 충격적이어서 그 느낌이 오래 갔네요.

  • 정글의 짐승들도 자기 배만 어느 정도 다른 생명들을 함부로 해치지 않죠.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쌓아두지도 않구요.
    정글보다 더 험한 세계가 바로 우리네 이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약육강식보다 더 치열한 서바이벌을 견디며 살아가는 약자들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그 경쟁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거겠죠.
    봄은 오는데 희망도 함께 와야할텐데요. ~~

    • 진부한 이야기지만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이라는걸 새삼 느낍니다.
      아저씨가 마지막 짬뽕국물을 들이마시기 전에 했던 심호흡도 깊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죠.^^
      삶의 풍경에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네요^^

  • 잘 지내시죠?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
    가끔 올리시는 포스팅 보고 있습니다. 안부 여쭙고 갑니다.

  • 그 아저씨에게는 짬뽕 한그릇이 현실을 붙잡는 끈일까요?
    그렇다면 제발 놓지 마시고 봄을 맞이 하셨으면 하네요.
    잘 봤습니다~ ^^

  • 무거운 고민입니다.
    동물의 세계가 그러하듯 사람들의 세계에서 약육강식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정글의 사회가 과연 괜찮은 건지 맞는 건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거든요. 늘 고민해야겠죠. 늘 생각해봐야 하고.

    • 세상속의 모습과 세상밖의 모습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것 같아요. 인간사가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사는것이 순리라고는 하지만, 그 기본적인 법칙 조차 힘겨운 사람들이 많다는걸 느꼈습니다. 가슴이 아프네요.

  • 잘 지내시죠?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
    가끔 올리시는 포스팅 보고 있습니다. 안부 여쭙고 갑니다.

  • 2011.07.16 20:49

    비밀댓글입니다

  • 잘 지내시고 계시죠? ^^
    한동안 블로그 업데이트가 안되시는 것 같아서, 소식이 궁금하긴 하지만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리라 생각하면서...발도장 오랜만에 남기고 갑니다.

    막바지 여름 건강히 잘 보내시구요,
    선선한 가을이 올때쯤 블로그 컴백부탁드려요 ^^


꼬불꼬불한 아줌마 파마. 작은 체구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쪼글쪼글한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엔 표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담배를 사며 친해진 슈퍼마켓 아저씨가 살짝 일러준 말에 의하면, 동네에서 가장 억센 할머니란다. 화가 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아무에게나 퍼붓는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늦은밤에도 분리수거함을 뒤지며 폐지와 빈병을 모으는 할머니였다. 할머니 옆에는 조그마한 리어커와, 덩치가 큰 딸이 있다.

너무도 까만 얼굴에 정리하지 않은 머리카락. 낡은 운동화에 발목양말을 신고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할머니의 딸과 시선이 마주친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나이이거나 나보다 조금 아래일것 같다. 굳이 슈퍼마켓 아저씨의 말을 듣지 않았어도, 멍한 눈에 둔한 행동을 보면 지능이 조금 모자란 사람의 모습이다.

햇볕에 따갑게 내리쬐는 오후, 모녀를 바라보며 벤취에 앉아 마냥 멍하게 앉아 있다.

사랑 하나.

강풀의 만화를 원작을 영화로 한 "바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 나오던 나레이션 처럼,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으례 '바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있었다.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었고, 잔인한 아이들에게는 몇년동안 훌륭한 놀잇감이 되기도 했다. 

내가 살던 그곳에도 태생적으로 지능이 모자란 아이가 있었다. 가까운 곳의 이웃은 아니어서 가끔 지나가며 보곤 하는 풍경이었지만, 아이는 늘 여러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베시시 웃는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곤 했다. 

감상적이던 어린시절, 멀리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심약하고 깡마른 친구와 함께 그 아이와 놀아준 적이 있다. 우리의 친절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침을 흘리며 우리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우리의 그런 모습은 좋은 놀림감을 잃어버린 동네 아이들에게는 무척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며칠을 그렇게 놀고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시절에는 으례 골목대장 같은 녀석이 있었고, 깡말랐지만 키가 무척이나 컸던 한 녀석이 시비를 걸었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녀석이 던진 몇마디의 말이 나를 무척 화나게 했던것 같다.

옆에 있던 심약하고 겁많은 친구는 도망을 가고, 오기와 고집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는 그 녀석에게 대들었다. 신나게 녀석을 패주고, 동네 아이들을 물리치고 불쌍한 아이를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물론 생각만 그러했다.

옷이 찢어지고 코피가 터지고도 한참을 두들겨 맞았다. 녀석은 때린곳만 집요하게 계속 때렸다. 그래서 더 아팠다. 분함을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를 내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맞은것에 대한 분함 보다는 홀로 남겨진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던 분함이 더 컸던것 같다. 어머니의 집요한 추궁에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며칠을 끙끙 알았다. 아직도 한쪽 볼에 손톱으로 활퀸 그때의 자국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것을 보면 꽤 많이 맞았던것 같다.

한숨 한모금.

꽤 시간이 흘렀고, 아이의 모습도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게 되었고,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목소리는 굵어졌고, 키가 부쩍 자랐다. 친구에게서 비틀즈의 테이프를 빌려오는길에 다시 어릴적 그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깔끔하고 예쁘장한 외모.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와는 달리 화장을 곱게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이제 불쑥 커져버린 아이의 손을 쥐고는 무언가를 타이르고 있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아이는 여전히 멍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스포츠로 짧게 깍은 머리를 아이의 어머니는 쓰다듬고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방긋 웃음을 지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나는 머슥한 기분에 그저 목례만 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타고온 자동차에 올라탔다. 아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방긋방긋 웃어댔다. 아이의 어머니는 긴 한숨과 함께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나이든 할머니가 소리를 치며 아이의 손을 잡아 끌었고, 아이는 이내 골목안으로 사라졌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아이의 어머니를 태운 차가 시동을 걸었다.

차가 사라진 그곳에는 아직도 아이와 어머니가 나눈 사랑의 체온이 남아있는듯 했다. 골목으로 사라진 아이의 뒷모습과, 차를 타고 사라진 어머니의 뒷모습에는 긴 한숨이 남아 있었다.


동네 공원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할머니가 잠시 벤취에 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 쉰다. 할머니의 옆에 덩치큰 딸이 나란히 앉는다.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름진 얼굴의 땀을 닦는다. 덩치큰 딸은 옆에서 쉼없이 재잘 거린다. 할머니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멍하니 쓰레기 더미만 쳐다 본다. 덩치큰 딸은 산만하게 이리저리 다리를 흔들어 댄다. 그러다가 벤취뒤에서 찌그러진 캔을 발견하고는 주워서 할머니에게 건네준다. 그것을 본 할머니의 얼굴에 알듯말듯한 미소가 번진다. 할머니의 미소를 본 딸은 크게 소리를 내어 웃는다. 할머니는 앙상한 팔을 뻗어서 딸의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오랜 시간 분당에서 살다가 이곳에 온지 반년이 조금 넘었다. 건물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사람의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 오면서 생각이 참 많아졌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이곳으로 막연하게 오게되었다. 낯선 곳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고, 어제와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살아 움직이는 발걸음속에 모든것이 담겨있는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조금 더 한적한 곳으로 떠나야 할것 같다.

아련한 기억속에는 늘 사랑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때로는 아픈 사랑이 있고, 잊혀져 버린 사랑도 있으며, 기억해야할 사랑이 있다. 가끔은 아픈 사랑속에 담겨진 긴 한숨이 있기도 하다. 산다는 것은 늘 이렇게 사랑을 품는 것 같다. 가슴속 깊이 숨을 들이쉬더라도, 내쉴땐 긴 한숨이 되는 것도 있다. 그래도 그것이 사랑임은 변하지 않는다. 내리쬐던 햇살이 뜨겁던날, 사랑 하나와 긴 한숨을 느껴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가, 짬뽕국물 이야기  (15) 2011.02.23
사랑 하나, 한숨 한모금.  (11) 2009.08.04
늙은 아들의 소원.  (6) 2009.03.29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6) 2009.03.19

Comment +11

  • 그러고보니 누군가에 의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아닌 옛기억은 많지 않네요.
    오늘의 기억은 훗날 어떻게 남아 있을지..아이, 아내, 가족,
    가슴 터지는 소식들을 들으며 그저 안주하는 휴가 중의 하루, 오늘의 나는 어떤 기억속에 남을런지요.

    • 기억은 늘 사랑을 더듬어 간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삶이라는것이 이렇게 좋은기억과 사랑을 담는것 같습니다.^^ 휴가중이시군요.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 너를 미소짓게 할 수 있어. 라는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저는 마스크를 봤습니다.
    입을 벌린 거였군요. 쿨럭. ^^

    사랑. 이런 형태로 저런 형태로 우리 주변을 수놓고 있습니다.
    다만 그게 보려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고
    보려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듯. ^^

    잔잔하고 차분한, 개츠비님이 소망해 마지 않는 글을 쓰셨네요. ^^
    앞으로도 쭈욱 이런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개츠비님 보시기에 저는 어떤 글을 소망하는 것 같으신지요? (문제입니다. 정답은 없는. ^^)

    • 보이는것만 보는것도 자신만의 행복일지도 모르죠. 해충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답니다.

      아마도 비프리박님이 바라는 글이란, 감각적이고 에로스적이며 물리지 않는 뭐.. 그런 사랑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ㅎㅎ 정답이 없다길래 마음대로 말해봅니다.^^

  • 2009.08.06 22:08

    비밀댓글입니다

    • 프랑스의 한 작가는, 삶은 영원히 혼자일수 밖에 없고,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가장 진실된 세상일수밖에 없다고 말했죠. 아마도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지만, 그 속에 묻어나오는 여백의 의미가 이런저런 고민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백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공허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죠.
      아프지만,힘을 내야 할것 같습니다. 여백은 그저 공간으로 남겨두고 자신이 그려야 하는 그림을 그려야겠지요.

  • K, 2009.08.06 22:30 신고

    시원스레 비라도 내려주면 좋겠는데, 잠시 내리다가 멈췄어요.

    Nobody can make me smile.
    Nobody but ....

    아...비 오네요. 시원하게~~~~!!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고 계시죠~~~??!!

    • 여기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군요. 요도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누는 오줌과도 같아 보입니다.음...표현이 좀 그렇군요.;;;;

      행복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8월 어느날의 밤을 맞이하고 있답니다.^^

  • 2009.08.06 22:31

    비밀댓글입니다

  •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코메디의 단골인 조폭이 나오지 않아서 더 좋았다. 수년간 조폭들이 주름잡던 코메디영화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것만 같다.
거리는 한적하고 산아래 나무들은 푸르러 간다. 심술맞던 꽃샘추위도 이제 물러가는것 같다.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띈다. 지팡이에 중절모. 쇠잔한 몸에서는 알수없는 꼿꼿한 고집이 풍겨온다. 소박하지만 보기 힘든 할아버지의 한복을 보면서 문득 몇해전 안타까운 기억이 되살아 났다. 봄은 희망을 이야기 하면서 찾아왔지만 기억은 쓸쓸한 감정을 더듬어 간다.

# 시선 하나.

어둠속으로 관이 들어가고, 지켜보는자의 울음소리는 멈추질 않는다.
아비를 잃은 늙은 아들은 아비의 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비를 잃은 늙은 딸은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부짖는다. 찌는 듯한 더위에 눈물과 땀이 뒤섞이고 매미의 울음과 사람의 울부짖음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어 멈추질 않는다. 그렇게 그해의 여름이 지나간다.

# 시선 둘.

늙은 아들은 손을 모아 절을 한다. 계절이 바뀌고 눈이 오기 시작했다. 매미와 사람의 울음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비의 산소옆에는 요구르트 몇개가 놓여있다. 생전에 달달한 요구르트 마시기를 즐기던 아비의 모습을 생각한다. 이제 모습은 사라지고 아비의 흔적만이 진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아비의 흔적은 이곳에 변함없이 남아 있고, 아비를 잊지 못하는 늙은 아들은 지나간 흔적들을 더듬어 간다. 기억과 미련이 교차하는 그 순간. 늙은 아들은 다시한번 눈물을 쏟아 낸다.



# 시선 셋.

꽃과 나무는 피고짐을 되풀이 하며 생명력을 이어간다. 때맞춰 내리는 비와 함께 자라나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한파에 몸을 움츠린다. 세월은 나무의 뿌리를 마르게 하고, 나이테의 흔적을 두껍게 한다. 변함없을것 같던 고목은 소리없이 쓰러지고 메마른 땅은 그것을 흡수한다. 미처 쓰러지지 못한 밑둥은 높은 하늘에 미련을 남기고 앙상하게 말라간다.

늙은 아들은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며 쓰러져간 고목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한다. 치매에 걸려 스스로를 희롱하던 아비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비는 넉넉한 웃음을 잃어버리고 가슴속 켠켠히 쌓아둔 울분만을 쏟아냈었다. 아비가 울었고 늙은 아들도 울었다. 늙은 아들의 시선은 초라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가난은 대를 이었고 그 역시 끈질긴 가난의 굴레를 비켜서지 못했다.

이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누이만 남았다. 아비를 잃은 늙은 누이는 아직도 아비를 찾아 울먹거린다. 오십을 넘긴 누이는 열두살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변하질 않았다.  아비가 남긴 마지막 혈육이며 짊어지고 놓지 말아야 할 삶의 무게가 되었다. 

# 시선 넷.

애써 외면하던 시선이 마주친다. 늙은 아들의 이마엔 깊은 주름이 패인다. 걸걸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산골의 농부에서 배를 타는 어부까지 안해본게 없다는 늙은 아들은 자신의 손이 마르고 닳도록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자식을 가지는 것은 사치였을 뿐이다. 혈육의 끈은 결코 끊을수 없었다. 젊었을때 주머니에 돈이 조금 생기면 어김없이 아비와 누이가 사는 이곳으로 와야만 했다.  한쪽 팔을 잃기 전까지 그런 생활은 반복되었다.

늙은 아들의 소원은 아비에게 한복을 입히는 것이었다. 어릴적 고상하게 늙어 가는 이웃들이 명절때만 되면 한복을 입고 넉넉하게 웃는 것이 부러웠다. 아비가 치매에 걸려 죽기 전까지도 그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비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사주는 것도 힘에 버거웠다.

늙은 아들의 한숨소리에는 미련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넉넉하고 단아한 한복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쫓고 있었다. 아비는 세상을 떠났지만 미련은 떠나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우리는 몸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우리를 바라보는 늙은 아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 선량한 눈웃음을 보여주며 말했다. '잘가시게, 젊은이들' . '고맙네..정말고맙네'  돌아오는 길은 늙은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 눈물 하나.

몇달 뒤, 늙은 아들은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목숨처럼 아끼며 수십년을 보살피던 늙은 누이를 남겨두고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주말에 찾아간 우리를 반기는것은 생기없는 세간살이와 울먹이는 늙은 누이뿐이었다. 50이 넘은 나이에 누이는 고아가 되었다. 그날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아비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에는 누군가 남겨두고간 국화꽃이 정성스럽게 심어져 있었다. 내리는 빗줄기에도 꽃은 쓰러지지 않았다.쏟아지는 비속에서도 아비의 무덤만큼은 고요하고 잔잔한 빗방울만 흐르고 있었다. 아비의 무덤을 보자 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지켜보던 우리들의 눈에도 빗물이 스며들었다. 비는 멈추고 다시 해가 찾아왔지만, 늙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 눈물 둘, 기억하나.

삶에는 분명한 변곡점이 존재하는것 같다. 스스로를 지탱해 오던 희망이 무너지고 나면 모든것이 무너지곤 한다. 가난의 굴레를 물려준 아비 일지라도 늙은 아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기나긴 긴장감이 무너지고 난뒤에는 모든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늙은 아들이 소원하던 아비의 모습은 볼수 없었고 커다란 미련과 회한만 남겨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혈육인 누이마저 놓고야 말았다.

한복입은 노인이 힘에 겨운지 허리를 한번 편다.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넉넉해 보인다. 아마도 늙은 아들이 그토록 바랬던 모습이 이런 여유로움 일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삶의 모습은 이렇게 쉽게 설명하기 힘들만큼 묘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 봄은 희망의 모습이어야 한다.  어딘가에서 아직도 이루지 못한 미련에 고민하고 있을 늙은 아들의 모습이 생각 난다. 그리고 그 주름진 얼굴이 생각난다. 이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희망과 사랑을 품었으면 좋겠다.
노인은 다시 발을 내딛는다. 바라보던 나도 시선을 거두고 발을 내딛는다. 비라도 오려는듯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고 거리의 모습은 변함없이 조용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하나, 한숨 한모금.  (11) 2009.08.04
늙은 아들의 소원.  (6) 2009.03.29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6) 2009.03.19
스누피 양말의 희망  (12) 2009.03.13

Comment +6


아이를 만난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밤이 되면 광화문에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촛불은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의 인파와 구호는 세상을 날려버릴것만 같았다. 명박산성이 등장하고, 그곳에 구리스가 아름답게 빛을 내던 날, 차가운 아스팔트위에서 아이를 처음 만났다.

인연 하나.

살다 보면 특별히 아는 것도 아닌데 유독 인상이 깊게 남거나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끈일수도 있고, 인간과 인간이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끌림일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우연히 아이와 마주쳤고, 아스팔트를 따라 걸으면서도 묘한 끌림은 지워지질 않았다. 그리고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이내 친해졌다.

아이는 왼쪽 다리를 약간 저는 젊은 청년이었다. 때가 묻은 모자와 낡은 스포츠가방을 매고 있었고, 무리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걸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말라보이는 어깨에 커다란 눈, 상기된 얼굴표정에는  알수 없는 열정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밤늦도록 길을 걸으며 해충박멸을 외쳤다.

헤어질 무렵엔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고, 여름이 끝나가기 전에 저녁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내다가 해가 바뀌기 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는건 맵다.

꽤 추운날이었다. 오랜만에 만에 만난 아이는 두툼한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하고 물어 보니 매운 불닭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매운것을 잘 먹지 못한다. 심지어 라면을 먹을때에도 그 매운느낌 때문에 고민을 해야 할 정도다. 매운것을 먹고 나면 밤새 속이 아파서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다른거 맛난거 먹는게 어떠냐고 재차 물었다.

" 오늘은 불닭이 꼭 먹고 싶어요. 형님. 하하.."

웃으면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절대 이길수 없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불닭을 시키고 밥을 곱배기로 주문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날이 추운만큼 음식이 익어 가는 실내는 따뜻했다. 아이는 '설치류 왕조'과 '해충이 우리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미친듯이 이야기 했다. 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서빙하던 아이가 와서 이곳음식이 근처에서는 제일 맵고 맛있다는 자랑을 하고 갔다.  배가 고팠는지 아이는 정말 맛있게 먹었고 나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이는 고아였다. 부모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부모는 불편한 다리를 아이에게 물려주고는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작은체구의 아이에게는 친구도 없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과 세상에 대한 증오심만을 가지고 살았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공단에서 일을 해야 했다.

세상과 홀로 마주치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는 세상의 거대한 벽에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꿈과 희망을 잃어 버리고 사람들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어 갔다. 말없이 교실의 구석에 앉아 있던 아이는 세상에 나와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세상은 정말 맵고 독했다. 공장의 소음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아이의 눈에는, 파도처럼 물결치는 사람들의 인파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따돌림만 받던 아이에게는 무척 공평한 세상이었다. 아이를 위해서 커피를 가져다 주고, 아스팔트위에서 처음보는 사람들과 웃으며 김밥을 먹었다. 아이는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세상과 행복에 대한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는 이제 사람을 보고 웃는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세상과 내가 다르지 않고 함께 어울릴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더이상 불편한 왼발 때문에 숨죽여 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토록 절망스럽던 외로움도 이제 견딜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한없이 저주했던 불편한 왼발이 이제 더이상 밉지가 않다고 말한다.

아이의 눈에 작은 눈물이 맺힌다. 나도 눈물이 흐른다. 다 큰 어른이 왜 우냐고 말하며 웃는다. 불닭이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해준다. 아이도 웃고 나도 웃는다. 그렇게 밤이 늦도록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도심속의 밤은 빠르게 다가온다. 병원문을 나서는 환자들 앞을 지나가며 불현듯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와 헤어질때 나는 두가지를 약속했었다. 하나는 너의 왼발이 되어 줄테니까 외롭거나 화가날할때면 언제든지 나를 찾으라는 것이었고, 매달 책을 한두권씩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아이에게 책을 소포로 붙였다.

소포가 도착하면 아이는 늘 싱글벙글 웃는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아이는 불닭을 먹은 이후로 나를 울보형 이라고 부른다. 공장에서 나는 쇠를 깍는 소음속에 아이의 웃는 모습과 갸냘픈 어깨가 보일것만 같았다. 지난번 아이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불경기속에서도 월급이 5만원 올랐다고 자랑했다. 아마 내일이면 아이가 다시 전화를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설명하기 힘든 끌림이 있는것 같다. 아픔과 기쁨을 누구나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직감으로 알아내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것 같다. 그래서 인연의 끈은 이렇게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것 같다.

아이의 왼발을 생각한다. 세상의 벽은 높고 인간의 편견은 깊다. 아이의 왼발은 오를수 없는 장벽속에 웅크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일 것이다.  나의 왼발을 쳐다본다. 그저 불편없이 살아왔음에도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투정을 부리고 살아왔는지를 반성해 본다.

봄이오는 길목, 사람과 사람사이에 만들어지는 소중한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누고 어울려 살아가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아이는 나에게 소중한 추억과 행복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비록 부족하지만 너의 왼발이 되어주겠노라고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은 아들의 소원.  (6) 2009.03.29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6) 2009.03.19
스누피 양말의 희망  (12) 2009.03.13
흔들리는 시선 - 사랑한다 친구야  (4) 2009.02.08

Comment +6

  • G_Gatsby 님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세상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느껴져서 참 좋네요.

    • sandman님 댓글 감사합니다. 마음이 통하면 나이와 성별은 큰 문제가 안되는것 같습니다. 정작 외로운 사람들이 참 많죠. 작지만 하나둘씩 이웃들을 알아가다 보면 서로 웃는날이 더 많아지리라 생각됩니다.^^

  •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우린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군요.....!

    개츠비님 같이 따뜻한 분들이 많아서 설치류 하나때문에 나라가 망하진 않겠구나 생각했던 나날들이었죠..

    • 아 그러셨군요. 그때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었죠. 아직 1년이 채 안되었네요. 시간많이 흐른것 같은데 말이죠.

  • 언제나 메마른 감성을 이곳에서 봄비처럼 촉촉히 적시고 가네요~^^


시선 하나.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지하철앞 광장.
비가 내리고 난뒤에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차다. 황량해 보이는 광장에는  벤치가 흩어져 있고, 그 주변엔 생활정보지가 여기저기 흘어져 을씨년스럽다.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하듯 바람은 멈추지 않고 불어온다. 그 차디찬 광장의 끝자락에 볼품없이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띈다.

 차디찬 바닥에 커다란 보자기를 펴놓고 양말을 팔고 있다. 노점의 모습이 그러하듯 노란 박스종이위에 가격표가 붙어 있2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길조차 던지질 않는다. 보자기 끝 찬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안쓰럽다. 아마도 팔아야할 양말을 올려놓을 욕심에 자신의 무릎은 보자기에 걸치지도 못하고 차디찬 바닥에 내려놓았나 보다. 

 울긋 불긋 꽃무늬가 들어가 있는 여성용 양말. 앙증맞게 귀여운 아기들 양말이 한가득 널려 있다. 아마도 지난 겨울에 다 팔지 못해서 조금 더 지나면 팔리지 않을 겨울양말인것 같다. 시선은 양말더미 뒤에 있는 아주머니의 야위고 지친 얼굴을 바라본다.

양말 한켤레.

 아주머니의 작은 노점 앞으로 다가간다. 아쉽게도 남성용 양말은 없다. 양말을 선물할 아내도 없다. 양말을 신을 아이도 없다. 순간 우물쭈물 당황한다. 검은 양복입은 낯선 사내의 모습에 아주머니도 당황한다. 그러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 신사용 양말은 없는데...."

 비록 내가 신사는 아니지만 아주머니 말대로 내가 신을 양말은 없어 보였다. 정장에 꽃무늬가 새겨진 여성용 양말을 신고 다닐 용기가 내겐 없다. " 2개 1,000원" 이라는 노란색 가격표가 보인다. 뭔가 대꾸를 하면서 사고는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우리..아이.. 주려구요....."



아주머니는 흰색과 검은색이 들어가 있는 양말을 골라 보여준다. 작은 스누피가 웃고 있는 모양이 들어가 있다. 양말에 개그림이라...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걸 사기로 한다. 같은걸로 2개를 고르고 만원짜리 한장을 건냈다. 거스름돈을 주려고 하는 아주머니에게 잔돈은 됐다고 말한다. 아주머니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것만 사면 되니까 그냥 가지세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막무가내로 잔돈을 내게 건내준다. 추운데 커피라도 한잔 하시라고 우겨본다. 그러면 안된다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겨울바람탓에 거칠어 보인다.

웃으며 돌아서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양말 두켤레를 더 쥐어 준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어쩔줄 몰라 하는 시선을 거둔다. 나도 어색하게 많이 파시라고 말하며 돌아선다.

황량한 거리엔 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걸음걸이 마다 뜨거운 입김이 흘러 나온다. 차가운 콘크리트에서 하루종일 양말을 파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다시 눈에 보인다. 슬픈 감정이 밀려왔지만 양말에 새겨진 스누피는 아직도 웃고 있었다.


기억 하나.

집으로 돌아와 양말을 꺼내어 벽에 걸어놓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클로스가 양말에 선물을 준다고 하던데, 시즌을 넘겨 버렸으니 소용이 없을것 같다. 그래도 혹시 좀도둑이라도 들어와 살림살이가 빈곤한걸 보고는 돈이라도 넣어주고 갈지 누가 알겠는가. 벽에 걸린 스누피를 마치 훌륭한 그림이라도 감상하듯이 오랫동안 쳐다 본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것 같다. 살아가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우리들의 모습도 변하지 않는것 같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변하지 않는것 같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양로원에서 죽어가던 한 노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살아오면서 배우지 못한 설움이 제일 큰것 같다. 돈을 버는 방법을 모르고 그저 착하게만 살아왔던게 한이 된다. 나이는 먹었지만, 세상을 배우지 못한것이 제일 후회된다. 노인은 그렇게 서글픈 말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계절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 간다. 시대는 우량아를 요구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관심을 거두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느껴야 하는 진실과 감정이 메말라 간다. 겨울 바람은 매서운 생존의 끝자락에서 뜨거운 심장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벽에 걸린 양말을 보면서 하나를 기억에 담아 본다.
아주머니가 파는 양말에는 삶에 대한 치열한 눈물이 묻어 있었다. 양말의 의미는 동정과 슬픈 감정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우리들의 희망일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의 의미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6) 2009.03.19
스누피 양말의 희망  (12) 2009.03.13
흔들리는 시선 - 사랑한다 친구야  (4) 2009.02.08
바보 형과 길 잃은 강아지  (6) 2008.12.18

Comment +12

  • K. 2009.03.13 23:48 신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죠.
    거스름돈을 극구 사양하셔서, 받지 않으려고 했던 제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사다 드린 음식은 환한 웃음으로 받으셔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던 기억이 나는군요.
    불편한 몸으로 장시간 서 있기도 힘들텐데, 아주 번잡한 사거리에서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죠.

    근데, 왜 스누피 싫어하세요? 귀엽잖아요~~~ ㅎㅎ

    • 스누피 귀엽죠.^^ 가끔 느긋하게 살아가면서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을 봅니다. 볼때만다 존경스럽더군요. 부자란 재물이 아니라 나눌수 있는 마음을 가진자만이 누릴수 있는 행복인것 같아요.^^

  • 2009.03.13 23:51

    비밀댓글입니다

  • 쌀쌀한 날씨에 가슴 따듯해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

    • sandman님 방문 감사합니다. 마지막 추위가 왔나봐요. 겨울보다 더 추운 바람이던데요.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파릇파릇한 봄이 오겠죠?^^

  • 언제가 매서운 바람속에서 파지를 모으고 있는 할머니와 마주쳤었는데, 그 곱은 손이 눈에 들어와 사라지지 않더군요. 집으로 가던 길을 되돌려 호빵과 캔커피를 사들고 할머니 옆에 앉아서 같이 먹고 돌아서는데, 뭐랄까요.... 쓸쓸한 기분? 개츠비님은 가끔 제가 잃어버리고 있던 따뜻한 기억을 하나하나 찾아주시는군요~!!!

    유부남으로 변신할 수 있는 따뜻한 심지~!!!

    •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 세상이 달리 보이는것 같아요. 우리가 욕심을 내야 할것은 내 안에 있는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날자여치님도 좋은 기억이 있으시군요. 관심과 공유, 사랑의 감정이 가장 행복하고도 이쁜 기억인것 같아요. 방문 감사합니다.^^

  • 믹시업이 3번밖에 안된다는게 안타까울만큼 좋은 글입니다.양로원 할아버지의 말이 참 가슴에 남네요.

    • 볼우물님 방문 감사합니다. 삶의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삶의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요. 헛된 지식이 가득한 삶 보다는, 지혜로움이 가득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추한곳에 오셔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그 느낌을 알것같아 씁쓸함을 같이 느끼게 되네요.

    • 대따오/불면증님 방문 감사합니다. 그래도 산다는 것은 희망이어야 하겠죠. 서로 시선을 피하기만 하는 요즘 현실을 보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봄이네요. 가끔은 꽃이 피는 모습도 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모두 다 되는것은 아닌것 같다.
흔들리는 세상에 하나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더라도 때로는 세상의 시선에 어우러져 자신의 시선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오늘 문득 걸려온 목소리는 담담하게 자신의 파산 소식을 전했다.


돌팔이 의사 이야기.

   기억을 더듬어도 언제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또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땀흘리며 어울리던 또래들과는 달리 녀석은 늘 외토리 였다. 두꺼운 뿔테안경과 투박한 얼굴은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비싼옷과 깔끔을 떠는 녀석의 행동을 보면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우리와는 달리 부잣집 외동아들 같은 분위기는 아직 순수했던 우리들에게도 뭔가 모를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결코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나중에 녀석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나이 터울이 많은 형님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한번 어울린 우정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비록 유난히 깔끔을 떨고 이기적인 성격의 녀석이었지만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이 있었던것 같다.  이뻐할순 없지만 미워할수 없어서, 늘 손해를 보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멀리 할수 없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해서 치대를 가게 되었고, 가난하고 모잘랐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녀석이 졸업을 하고, 한 치과에 취업을 했을때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자신이 한턱 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서는, 자정이 넘어서 슬그머니 술에 쩔은 우리들을 버려두고 도망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녀석을 조직적으로 따돌림 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명씩 포섭하면서 끈끈하게 달라붙는 녀석에게 곧 지고 말았다. 녀석은 돈을 빌릴때에는 수완이 좋았고, 돈을 빌려줄때는 늘 바빴다. 늘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알수 없는 이유로 녀석은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 

   녀석은  투박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아내를 얻었다. 연애하던 시절 우리앞에 소개했을때, 우리는 장난인줄만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이제 얻었노라고 기뻐하며 녀석은 술에 취했다. 물론 자정이 넘어 모두가 취해갈 무렵에 녀석은 자리를 털고 조용히 사라졌다. 남은 우리들은 지갑을 다시 털어야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녀석은 모든것이 잘풀렸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자신의 병원을 갖게 되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끼고, 장비를 리스하고, 크지 않은 병원이었지만 녀석의 소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때 녀석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녀석이 지갑을 열어 술값을 내는것을 처음 보았으며, 술에 취해 집에 가는 우리들에게 택시비 까지 쥐어주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녀석은 자신의 이름을 단 간판을 보며 무척 기뻐했다.

   아마도 녀석을 미워할수 없었던 것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앞을 바라보며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살아가는 녀석의 어깨에 묻어 있는 일상의 피곤함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은근히 친구들을 챙기며 걱정해주는 녀석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녀석의 행복한 미소를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흔들리는 시선. 가야할 곳에 머물다.



   가끔식 통화를 하는 녀석은 작년 여름부터 무척 어렵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힘들다는 말도 가끔했었다.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도 문제고 엔고 때문에 리스로 빌린 장비의 이자비용도 크게 늘어나는것 같았다. 그래도 녀석의 목소리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했다.

   녀석에게 아이가 생겼다. 자신을 닮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녀석은 멋적게 웃었다. 우리가 보기엔 많이 닮아 보였지만, 차마 그 말만은 하지 못했다. 아이의 백일이 되어도 우린 초대받지 못했다. 가족끼리 조용하고 하고 싶다는 녀석의 바램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달이 흘렀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파산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가게를 정리하고 부채를 정산하고 집을 정리하고 다시 취직을 해야 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지만 늘 잘 견뎌왔고, 이제는 자신의 가족이 생겼으니 더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쓴소주도 필요없고 의미없는 푸념도 필요없다고 말했다. 병원을 정리하는 순간부터의 시간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녀석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고, 녀석의 세상사는 법도 변함이 없음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흔들림에 지쳐 버린다. 요즘처럼 우울한 이야기가 가득 할때면 더욱 그러하다. 어두운 경제소식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세상속에서도 바라봐야할 곳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돌팔이 친구 녀석에게는 새롭게 생긴 가족이 희망이 되었다. 녀석이 베풀고 느껴야할 아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문득 창을 열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본다. 세상은 우리들이 내는 서로 다른 색깔들로 채워져 있다. 가야할 곳이 있는 자동차들은 오늘도 쉴새 없이 달려가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조화로움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야할 희망사랑만은 흔들리지 말아야겠다. 밤이 깊어지고, 나는 녀석에게 오랜만에 문자를 보낸다.

"사랑한다. 친구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omment +4

  • 갯츠비님은 정말 마음이 따스한 분이시네요.
    그 친구분은 그래도 정말 행복한 마음이 들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으니까요.
    남자에겐, 그보다 더한 위로가 어디있을까요.

    • 누군가 믿어준다는 사람이 있다는것이 정말 큰 행복이죠. 누군가 믿을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이구요. 시련이 있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방문 감사해요.

  • 친구를 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예요.

    저도 친구한테 문자나 함 넣어볼까요?

    '쥬탱 모해? 밥은 먹고 자냐?'

    •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터놓고 지낼수 있는 친구가 사라지죠.^^ 그래도 늘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친구를 보면 제가 기분이 좋답니다. 가끔은 뜬금없이 사랑한단 문자 넣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날자여치님 방문 감사합니다.^^


  아마도 오랜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살아온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시간의 흔적은 언제나 그렇듯이 잡힐듯 말듯 모호하다. 그 기억은 때맞춰 내리는 겨울비속에 비추어진 풍경만큼이나 흐리고 아련하다.

슈퍼마켓집 외아들.

  어릴적 동네 슈퍼마켓을 하던 아저씨의 집 외아들이 있었다. 꽤나 넉넉한 풍채의 아저씨는 늦게 얻은 아들을 끔찍히 사랑했다. 나 같은 꼬맹이들은 그 아들을 형이라고 불렀다. 몇살 터울이 나진 않지만, 형은 우리들과는 달라 보였다. 마치 부잣집 외동아들처럼 근엄하고 얌전하며, 성숙해 보였다. 아니 무언가 우리들과는 다른 세상의 사람같이 보였다. 형의 눈빛은 다부지고 단호해 보였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웃분들은 그 형을 보며 총기가 넘친다고 했다.

  까까머리를 하고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형은 고등학행쯤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교 1등을 도맡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형은 조금더 근엄해 보였고, 이웃들은 슈퍼마켓 아저씨를 부러워 했다. 매일 지나치는 슈퍼마켓 유리창속의 아저씨는 늘 넉넉한 미소가 있었다. 늦은밤 공부를 마치고 형이 돌아올때 까지 슈퍼마켓의 불빛은 꺼지질 않았다. 형은 점차 이웃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어느날.형이 갑자기 변했다.
이웃사람들은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형이 미쳐 버렸다고 했고, 귀신병이 들었다고 했다. 동네사람들은 소란스러워졌다. 넉넉하게 웃음짓던 아저씨가 눈물을 흘리며 병원으로 가던날부터 오랫동안 슈퍼마켓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총기 넘치던 형을 본것은 그것이 마지막 이었다.

  유난히 춥던 그해 겨울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 다시 형을 볼 수 있었다. 겨울 햇빛이 따스하게 내려쬐던 곳에 형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총기어린 눈빛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었다. 형은 그저 척박한 아스팔트속 풍경속으로 멍한 시선만을 던지고 있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새해가 오면서 형은 19살이 되었다.

회상 하나.

  시간은 흘렀고, 놀이터에서 놀던 꼬맹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뿔뿔이 흩어졌던 꼬맹이들은 명절이 되면 용케 몰려들어 하나가 되었다. 고향집은 늘 그리움 이었다. 아저씨의 슈퍼마켓은 조금더 규모가 커져 있었다. 그리고 슈퍼마켓앞에는 작은 의자가 있었고, 그곳엔 형이 앉아 있었다. 형은 푸른 하늘과 메마른 땅을 번갈아 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알수 없는 말을 하곤 했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형은 아직도 19살에 머물러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우리들의 모습도 바뀌어 갔지만, 형은 늘 19살 까까머리의 모습 그대로 그곳의자에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형이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 왔다고 했다. 못먹고 병들어 보이는 흰색의 작은 강아지는 금방 죽을듯이 아파 보였다고 했다. 이젠 넉넉한 웃음을 잃어버린 아저씨는 버리라고 한바탕 소동을 부렸다고 했다. 슬픈 눈빛의 강아지를 꼭 안고 있는 형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완강했다고 했다. 그날밤 형은 그 강아지를 품에 꼭 안고 잠들었다고 했다.

회상 둘.

  이젠 또하나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죽어가던 강아지는 용케 살아서 형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멍하나 하늘을 바라보던 형은 강아지를 보면서 가끔 웃었다. 그럴때마다 강아지는 꼬리를 신나게 흔들어댔다. 형은 강아지를 지키고, 강아지는 형을 지키고 있었다. 햇살 따가운 여름날에도 그들은 나른하게 먼풍경을 바라 보았고, 그것을 바라보던 나에게도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시간이 꽤나 흘렀다.
형은 아직도 19살의 모습 그대로 멍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형의 몸은 눈에 띄게 수척하고 늙어갔다. 형을 보살피던 아저씨의 허리도 굽어보였다. 형의 옆을 지키던 강아지도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느날 갑자기 모두 사라질것 같은 낡은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웃들은 형이 암에 걸렸다고 했다. 시기를 놓쳐서 이제 얼마 살지 못할거라고 말했다. 노인이 된 아저씨는 매일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총기를 잃은 형의 어깨는 점점더 앙상하게 말라갔고 얼굴빛은 점점더 하얗게 되었다.




  형을 마지막으로 본것은 몇해 전이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부랴부랴 집을 다녀오던 내가 자동차 너머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형은 어느새 노인의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형의 눈빛은 촛점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도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차에서 내려서 인사를 했다. 나를 알아볼리 없는 형은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형의 옆에 있던 하얀색 늙은 개가 형의 다리에서 재롱을 떨어댔다. 멍한 눈빛으로 세상을 보던 형은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때 형의 눈빛에 퍼지는 커다란 기쁨을 보았다. 분명히 형은 웃고 있었다. 눈빛으로 웃고 입술로 웃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은 늙어버린 개 밖에 없는듯 보였다. 죽어가던 자신을 안아주던 형을 향해 늙어버린 개는 너무도 반가운 꼬리짓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늙은 개의 배에는 커다란 종양이 눈에 띄게 보였다. 벌여진 입사이로는 이빨도 잘 보이질 않았다. 형의 모습처럼 어린 강아지도 어느새 늙어 버렸다. 그리고 늘어진 종양의 무게만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다시 차에 타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풍경은 어느새 흑백사진이 되어 나의 머리에 기억되고 있었다.

비오는 풍경

  다시 내가 고향집을 찾았을땐, 형의 모습도, 늙은 개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슈퍼마켓의 앞에 놓여있던 작은 의자도 보이질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볼수 없었다. 슬픔보다 더 큰 허전함밀려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버스를 탔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창밖의 풍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차가 출발하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의 풍경은 흘러내리는 빗물로 인해서 서서히 흐리게 변했다. 그리곤 밖의 풍경을 구별하지 못할만큼 비가 퍼부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세상속 풍경을 바라볼수 없었던 형이 죽어가던 어린 강아지를 보듬은 것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던 눈빛을 놓아버린 형과 비슷한 처지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이해할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형이 바라보던 세상은, 비오던날 내가 바라보던 차창밖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잃어 버린 형의 모습과, 길을 잃고 아파하던 강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어쩌면 같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잃어버린 세상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가 되고 있었다. 이제 흑백 사진이 되어버린 그 풍경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세상과 사랑을 배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omment +6

  • K. 2008.12.19 22:34 신고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나이들어 가면서도 서로 마음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겠죠.

  • 2008.12.20 01:24

    비밀댓글입니다

    • ㅎㅎ 강아지 사진 너무 이쁘죠. 시간이 정지한듯한 풍경 역시..시간에 따라 흘러간다는것이 꽤나 충격적이었죠. 우리 주변에는 그런 풍경이 많은것 같아요.^^

  • 오랜만에 어렵게 다녀갑니다. 우수블로그 소식에도, 축하글에도 답방이 늦었습니다.

    멋진 주말 보내시고 계시죠?
    새해에도 변함없이 즐거운 블로깅으로 소통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자주 뵈요~~

    • 네. 초하님 방문감사합니다.^^ 초하님도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자주뵈요.^^


할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된것은 5년전 이었다.
당시 한 모임에서 돈을 모아 독거노인들에게 틀니를 선물하는 행사가 있었다. 보살핌없이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있었고, 뜻이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서른을 넘긴 나이. 하나의 길만에 집중하며 걷던 나에게는 뭔가 다른 세상의 풍경이 필요했었다. 이제 조금은 나만의 세상에 익숙해져 간다는 자만심도 있었고, 조금 가진것을 자랑하기 바빳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진정한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와는 다른 또다른 풍경에 대한 호기심만이 더 컸던 시절이었다.

초여름이 찾아오던 어느날. 경기도 연천의 작은 마을에서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하나의 기억.

두평 남짓한 방에서 혼자 생활하는 할아버지는 키가 컸고 체격이 좋았다.
선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입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마치 오래된 손주들이 온것처럼 기뻐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온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햇볕이 따갑던 여름날 오후, 우리는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첫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틀니를 입에 넣자, 할아버지는 훨씬 젊어 보였다.
미리 준비해간 쌀과 김치로 할아버지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이제 이빨이 생겼으니, 물에 김치를 씻지 않고도 먹을수 있다고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우리도 그모습을 보며 기뻐했고, 두평 남짓한 공간에서 함께 먹는 점심은 너무도 맛있었다. 서로 나누는 즐거움은 그렇게 모두에게 웃음을 주고 있었다.

떠나오던 길에, 우리는 돈을 조금씩 모아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받지 않았다. 돈이 필요없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함께 동행한 복지사가 커피와 담배를 사드리는게 좋겠다고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이웃에 사는 노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담배를 태우시는걸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즐겨피우시는 88담배 4보루와 커피믹스 2봉지를 사서 드렸다. 할아버지는 무슨 대단한 선물을 받는양 무척 기뻐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할아버지의 웃음을 기억했고 나눔의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며 앞으로도 자주 찾아 뵙자는 다짐을 했다. 할아버지의 낡은 구두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달 방문에는 한명이 급한일로 빠지고, 여섯달이 지난뒤에는 세명만이 찾아 갔으며, 조금 더 지난 이후에는 나만이 홀로 찾아가게 되었다.


하나의 배움.

70이 넘은 할아버지는 언제나 정정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무렵, 할아버지는 꽤 오랜 시간을 나와 마주 앉아 이야기 했다. 매월 15일이면 찾아가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손수 커피를 타주셨다. 봄햇살은 두평남짓한 할아버지의 보금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비추어 주었다. 세상은 바삐 돌아가고 있지만, 이곳은 아주 느리게만 흘러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독한 88담배를 입에 물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커피와 담배는 사치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동네 노인들과 함께 나누곤 했다. 평생 가진것 없이 살았지만 늘 행복했노라고 말했다. 몸을 눕고 다리를 뻗을수 있는 이 공간이 천국이라고 말했다. 하늘나라의 문턱에 들어선 나이에, 더이상의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 주었다. 혹시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려오겠노라고 말했다. 돌아가려는 순간,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내이름을 부르며 고맙다고 말씀 하셨다. 이름을 부르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방문한 복지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고, 자식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수년전 그저 흘러들어오다 시피 이곳에 들어왔고, 도시로 떠나 폐가가 된 곳을 수리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본적지에 있는 주소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이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것의 전부였다.

아마도 어릴적 일찍 세상을 뜨셨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봤는지도 모른다. 점차 희미해져 가는 그 기억을 할아버지를 통해서 다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포근한 할아버지의 품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가지기 위해서 치열하게 사는 내 주위의 풍경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돌아오는 길에 매번 느꼈다. 치열한 경쟁은 사랑 보다는 미움을 만들었고, 행복보다는 불행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홀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할아버지는 늘 웃고 있었다. 잠을 잘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이웃과 나눌수 있는 사랑이 있었으며 세상을 향해 웃을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세상은 점점 더 바빠져 갔다.
내 주변의 풍경도 점점 더 바쁘게 움직였다. 돌아보는 것은 사치였고 난 앞을 보며 달려야만 했다. 할아버지를 방문하는 횟수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가끔 방문할때마다 할아버지는 잊지 않고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었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작년 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할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매월 15일이 되면 할아버지 주소로 담배 4보루와 커피믹스 2통을 붙여 드렸다. 그것이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나의 그리움.

세상이 많이 어려워 졌다. 뉴스는 살기 어렵다는 비명을 연일 질러댔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10월은 나에게도 유난히 어려운 시간이었다.  15일이 찾아 왔지만 나는 소포를 보내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었지만, 나에게 닥친 위기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중단이 아니라 잠시 미루자고 마음을 먹었다. 조금 늦더라도 이해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올해 10월은 유난히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세상은 분명히 지쳐있었다. 나도 분명히 지쳐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잃은것에 대한 후회가 고민스러웠다. 이제 보이지 않는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바라보는 풍경은 모두가 어지러웠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잠시 쉬고 있었다. 유독 며칠동안 깊은 잠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자도 자도 끝없이 이어지는 야릇한 잠의 세계에 빠져서 하루종일 힘들어 했다. 삶에 대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었다. 꽤나 힘든 시간이었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낯선 전화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몇분간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어떤 질문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할아버지는 며칠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특별히 아픈데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죽은 다음날 동네노인에게 발견되어 바로 수습했다고 했다. 동네에서 화장을 해서 강에 뿌렸다고 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작은 수첩을 발견했고, 수첩에는 나를 포함한 몇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고 했다. 일찍 전화를 드려야 했는데 뒤늦게 봐서 지금에서야 알려주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가 말한 전부 였다. 전화를 끊자 알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할아버지는 15일에 내 소포를 기다렸을 것이다.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상자를 들고 우체부가 오는 모습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담배와 커피를 동네 노인들과 웃으며 즐길 여유를 생각하며 함박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나는 내 짧은 생각이 미워져 한없이 슬퍼졌다. 그것은 표현하기 힘든 슬픔이자 자책감 이었다. 그 조그마한 기쁨도 나누지 못하는 내가 싫어졌다. 모든것은 변명이 될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시간 먹먹한 가슴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두고두고 마지막 소포를 전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해야 했다.

할아버지의 웃음이 머물고 있었다. 그 웃음에는 슬픔을 찾을수 없었다. 사람은 세월을 먹으면서 지혜로워지고 넉넉해 져야 한다고 믿게 해주는 웃음이었다. 그것은 늘 포근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것을 잃고 살아가는 시간은 늘 피로감을 안겨 주었다. 내가 피곤한 잠의 세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겨울이 찾아오는 밤의 하늘은 어둡고 깜깜해져갔다.
도시는 온통 붉은색 네온사인으로 물들었고, 흥에 겨운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술에 취한 행인들의 목소리는 높아져 갔다. 모두가 세상에 취해서 이렇게 살고 있었다.  하나둘 불이 꺼지는 사무실 책상위엔 붙이지 못한 담배와 커피가 놓여져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주소를 마지막으로 적고 있는 내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omment +20

  • 2008.11.03 20:47

    비밀댓글입니다

    • 네 방문 감사합니다.^^ 살다보면 참 후회스러운 날들이 많은것 같죠. 할아버지의 웃음을 늘 기억하면서 붙이지 못한 소포는 늘 반성하면서 살아야할것 같습니다.

  • 최준만 2008.11.03 21:22 신고

    이거... 퍼가도 괜찮은가요??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지만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그냥 잠시 눈물이 날것 같네요 ^^;;

    • 방문 감사합니다.^^
      출처 밝히시고 가져가셔도 됩니다. 아쉬움이 남죠. 그래서 저도 요 며칠간 계속 우울해서 글을 적을수가 없었어요.

  • Favicon of http://blueclover.tistory.com BlogIcon 2008.11.03 23:06 신고

    떠나고 난 뒤에 남는 아쉬움...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래도 그분은 행복하셨을거예요.
    비록 혼자 조용히 생을 마감하셨을지라도...
    매달 같은 날 어떤 이의 소식을 기다리며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으셨을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네요.
    갯츠비님도 용기 잃지 마시고, 늘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늘 사는게 아쉬움이 남는것 같아요.^^ 그래도 아프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죠. 산다는것은 이렇게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으며 살기 때문에 공평한것 같죠.^^ 겨울이 이제 왔네요. 감기조심하세요.

  • 에이스쟌 2008.11.04 11:06 신고

    가슴 뭉쿨 해지는 이야기 입니다
    세상을 넓게 보는 당신 이기를 기원 합니다
    부모님 든 누구든 소중한 인연을 만들 어가는 인생이 나 였으면 합니다 좋은시간이였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인연이 소중한것은, 그 인연속에 담김 사랑과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웃을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2008.11.04 13:50 신고

    블로그 읽다가 울어본적은 처음이네요. 원래 댓글같은것도 잘 안다는 편인데...
    너무 좋은 글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저는 속칭 '블로거'라고 불리우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고 일 때문에 블로거뉴스를 찾아읽는 사람인데요
    처음으로 낯선 사람의 블로그를 찍어두고 고정방문하는 일이 일어날듯합니다
    종종 찾아오겠습니다.
    이야기 자체뿐아니라 필력도 상당하신것같은데 혹시 글로 먹고사는 분이신지...
    아무튼 잘 읽고갑니다..고맙습니다.

    • 방문 감사합니다. 저도 불로거라고 하긴 뭐하고 그냥 이것저것 잡다하게 글을 적고 있네요. 필력이라고 할것도 없구요.^^ 함께 살면서 좋은감정들 나누며 사는것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닌가 싶어요. 감사합니다.

  • 휴...

    • 오랜만이죠 권대리님. 요즘 좀 바쁘시다는 글을 봤네요.^^ 겨울이 오니까 다들 정신없이 바쁜것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 2008.11.04 18:44

    비밀댓글입니다

    • 아, 지적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정했습니다. 오류가 많은 사람이라서 큰 실수할때가 많네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 정말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할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소포가 더 마음을 짠하게 하네요.

  • 짠해지는 글입니다...

  • 아쉬움과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겠네요. 개츠비님 마음 속에.
    "아, 그때 ~~~ 했더라면!" 하는 수많은 가정들과 함께요.

    개츠비님 춘추를 미루어 짐작합니다. ^^
    여러 곳에서 접한 이런 저런 단서들을 좀더 조합하면 더 정확한 숫자가 나올 듯. ^^

    p.s.
    트랙백 덕분에, 마음으로 잘 읽었구요.
    답트랙백 놓고 갑니다.

    • 저는 뭐 적당히 늙어가는 사람입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죠. 그래서 늘 애매한 공간과 시간속에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트랙백을 안보낼까 하다가, 그래도 비프리박님이 야심차게 포스팅한거라서 제가 빠질수 없겠다 싶어서 올렸습니다. 우리시대 동화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은데 요즘은 적을수가 없는게 참 안타깝네요.


두 딸을 둔 아버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7시 정각에 길을 나선다.
버스를 타기 위해 걷는 이 길은 지난 십수년동안 변한것이 별로 없다.
시간에 따라 눈에 익은 사람들이 바뀌었고, 계절에 따라 옷차림이 바뀔뿐,  내리막을 걷는 이곳의 풍경은 변함없이 회색빛이다.
감기몸살로 열이 40도까지 올랐을때에도 그는 쉬지 않고 이 길을 걸어 출근버스에 올랐었다.  지독한 가난속에서 살아야 했던 어린시절의 오기가 그에게는 사명감 이상의 어떤 것을 갖게 했다. 그는 듬직한 가장이 되어야 했고 믿음직한 회사직원이 되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 회색빛 풍경을 그리다 "

유난히 마음씨 착한 첫 아이가 12월 이면 시집을 간다.
사위가 될 사람은 안정된 직장도 있었고 모아놓은 돈도 있었다. 나이에 비해서 과묵했지만 조리 있는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그를 더 마음에들게 한 것은, 딸을 바라보는 예비사위의 사랑스러운 눈빛이었다. 그의 애정과 배려의 눈빛속에서 고이 키운 딸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볼수 있을것 같았다. 이제 어느덧 노인이 되고 있는 그에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

작년에 사위를 처음 보고 난뒤 결혼을 승낙했다. 그는 딸아이앞으로 되어 있던 적금을 털었다. 그리고 돈을 더 보태 수익성이 좋다는 중국산 펀드를 계약했다. 회사동료와 함께 주식투자도 하기로 했다. 몇달을 망설인끝에 그가 결정한 생애 첫 투자였다. 그리고 그돈이 불어 결혼식때 좀 더 좋은 혼수를 할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침에 출근버스를 타러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차곡차곡 희망을 쌓아가던 그에게 힘든 시절이 찾아왔다. 주식은 연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펀드는 원금을 거의 다 잃어 버렸다. 잘 모르는 전문용어는 귓가를 맴돌았고, 원금은 점점더 사라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설마했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딸아이는 혼수 준비를 해야 했고 은행의 잔고는 없었다. 

몇년간 힘들게 모은 딸아이의 월급도, 용돈을 줄여 모은 그의 목돈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손꼽아 기다리던 딸의 결혼식은 이제 두려운 시간이 되어 버렸다. 밤에는 식은땀을 흘렸고, 아침 출근길의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 졌다. 아침 출근길의 풍경은 쟂빛 하늘과 회색 풍경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 오묘한 조화로움, 사랑을 느끼다 " 사위될 사람과 처음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이제 내 사람이 될 사위의 모습이 무척 듬직했다.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아들의 모습을 보는듯 했다. 이제 자신의 새 아들이 되어줄 사람이었다. 딸의 미래를 함께할 사람이었다. 무엇을 해줘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었다. 가을이 찾아오던 어느 저녁날, 미래를 꿈꾸며 흥겨워 하던 사위 앞에서 그는 목이 메었다. 자신의 우둔한 욕심에 대한 반성이었고, 딸과 사위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사위에게 털어놓았다.

" 어휴, 아버님 뭘 그런걸로 걱정을 하세요. 따님 주신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걸요"

사위는 장인될 사람을 위로하기에 바빳다. 그리고 장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돈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실을 말하기 힘들었을 장인을 위로 했다. 마음이 아팠을 장인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가족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것이라고 말을 했다. 사위의 말에 그는 또다시 목이 메었다.

오늘도 그는 회색빛 풍경속에 길을 걷는다.
한쪽만 닳은 구두 뒷굽도, 얼굴에 깊이 새겨진 주름살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구부정하게 굽은 그의 허리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제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바라보는 풍경은 여전히 회색빛이지만 그는 그속에서 또 하나의 색깔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또하나의 사랑을 낳고, 새로운 사랑은 또 하나의 사람을 향해서 비추고 있었다. 60이 다된 나이에 그는 새삼스럽게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던 딸아이는 오랜만에 그에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도 정말 오랜만에 딸아이에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또하나의 가족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남아 있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부끄럽기 보단, 또 하나의 가족과 나누게될 사랑의 기쁨이 더 크게만 느껴진다. 함께 마주보고 웃던 모습을 기억하며 그는 오늘 회색빛 풍경속에서 또다른 색깔을 찾아본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omment +10

  •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blueclover.tistory.com BlogIcon 2008.10.27 14:59 신고

    오랜만입니다. 갯츠비님.
    연일 떨어지는 주가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800선까지 추락하는걸 보면,
    국민들이 맹목적 배금주의를 가졌던 것에 대한 댓가이긴 해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경제에도 희망이 차츰 사라지는것 같아 안타까운 가운데
    사랑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담아갑니다.
    이 사랑이 언젠가는 마음속에서 또다른 희망을 의미하게 되겠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네 오랜만이죠?
      제가 요즘 너무 바쁘네요. 회사 동료의 이야기인데, 소주한잔 먹을때 넋두리처럼 이야기하던거에요.^^ 늙은 직원의 이야기가 참 오래 남더군요. 요즘 참 어렵죠? 저도 요즘 쉽지 않네요.^^ 늘 행복한 시간 되세요

  • K. 2008.10.27 19:42 신고

    힘든 때일 수록 사랑의 힘이 그 진가를 발휘하겠지요.

    돈이야 잃으면 또 벌 수 있지만,
    한 번 잃은 사랑은 다시 회복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 네. 사랑이 또다른 사랑을 만들고, 그것이 행복이라는걸 느끼는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줄수 있는것이 사랑이라면 자신도 너무 행복하겠죠.

  • 2008.10.27 20:19

    비밀댓글입니다

    • 무슨생각일까요? ㅎㅎ 솔직해 지기가 참 어렵지만, 마음을 열어 받아들일수 있다는것이 참 기억에 남네요.^^

  • 올때마다 가슴뭉클함을 가득 안고 가게되요~^^

    조금씩 깊어져가는 이 가을 잘지내시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네요. 건강챙기시구요~

    다음 포스팅이 또 기대됩니다.
    어떤 감동을 전해주실지...^^

    • 권대리님 정말 오랜만이죠? ^^ 제가 무척이나 바쁘게 사느라 제 블로그에도 올시간적 여유가 없었네요. 가을을 느끼기 전에 겨울이 오나봅니다. 저도 고생좀 했는데,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벌써 일년이 넘었다.
양복을 입은 녀석의 모습도 오랜만에 보았다.
천천히 걸어오는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던 녀석의 얼굴엔 표현하기 힘든 기쁨이 묻어 있었다.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녀석은 새로운 삶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꼭 행복한 걸음이 되어야만 했다. 녀석도 웃고, 신부도 웃고, 지켜보던 우리도 웃었다.

아픔이 너무 커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너무 커서 돌이킬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혼자만 울고 싶을때도 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 않고, 희망의 목소리는 멀기만 하다. 

" 꿈꾸던 스무살, 좌절을 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설레임 이었다.
그래서 스무살때에는 어른 흉내를 내기에 바빴다. 술과 담배를 찾게 되었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그야말로 해방구였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녀석은 운전 면허증을 땄다. 그리고 또래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태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함께 돌아다니던 녀석들도 운전 면허증을 땄다. 녀석의 작은 승용차는 늘 친구들로 만원이었다. 여름이 오자 그들은 작은 승용차에 모여 타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것이 녀석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늦은밤 길이 익숙하지 않았던지, 부산근교의 어느 국도에서 녀석의 작은승용차는 코너를 돌던 대형트럭의 뒷부분을 정면으로 들이받고 말았다. 그리고 앞자리와 뒷자리에 탄 친구들은 모두 현장에서 즉사했다. 녀석만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개강을 하고 나서야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제 녀석의 순박한 미소도, 빨간색 작은 차도 보이지 않았다. 술렁이며 안타까워 했지만, 누구도 녀석을 찾아서 위로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캠퍼스의 가을은 찾아왔고 축제가 이어졌고 곧 겨울이 찾아왔다. 스무살의 겨울은 꿈과 희망을 찾아 마음껏 부풀어 올랐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에서 잠시 쉬던 시간이 있었다. 무심코 찾아간 서점에서 녀석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이 녀석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운영하던 서점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녀석은 서점 입구의 카운터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삿말을 건냈고, 녀석의 어머니가 주신 음료수를 마셨다. 갈수록 말이 없어지는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은 꽤나 어두웠다. 가족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도,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의 모습도 무표정한 표정을 바꿀순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불행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웃고 떠들던 그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원망과 한숨만이 가득차 버렸다. 무표정한 얼굴에 가려진 짙은 그림자는 꿈을 잃어버린 것 이상의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켜보는 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해 겨울엔 유달리 눈이 많이 내렸다. 친구들은 모두 복학준비로 들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틈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을 꾸고 보내기엔 겨울은 너무도 짧았고, 눈이 내리던 거리엔 오래된 서점의 불빛이 밤늦도록 꺼지질 않았다.



" 주는 사랑, 받는 사랑 "

올해 추석연휴는 유난히 짧았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의 풍경은 그대로 였고, 거리에 자리잡은 오래된 서점도 변함이 없었다. 작년 여름에 결혼을 한 녀석에겐 벌써 아들이 생겼다. 다시 찾은 그곳엔 칙칙한 조명대신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홀로 화석처럼 앉아 있던 카운터엔 한살배기 아이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자주 찾아 오지도 않는 오래된 친구에게 녀석은 손수 커피를 타준다. 물을 가지러 가는 녀석의 절룩 거리는 다리가 힘차 보인다. 십수년간 그에게 아픔을 안겨 주었던 녀석의 다리는 이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책 냄새 가득하던 그곳엔 어느새 사랑의 향기가 가득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아버지를 보며 방긋 웃고 있는 아들과, 그 아들을 보며 방긋 웃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지켜 보던 나도 흥에 겨워 함께 웃었다.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지대한 사랑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지대한 사랑은 언제나 영원함을 꿈꾸고, 영원한 사랑은 곧 행복이 되어 버린다. 한 여인의 순수한 사랑이 녀석의 아픔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또 하나의 사랑을 만들었다.

이제 자신을 닮은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주고 받는 것이 사랑이며,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의 밝은 빛이 그 길고 아픈 터널의 끝에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십수년전에 꿈을 꾸던 우리들은 이제 더이상 큰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늘 세상과 힘겹게 싸워왔다는 아쉬움만 남았다. 싸워야할 이유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그리고 싸워야할 이유가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지나쳐온 길을 되돌아 본다. 차츰 어두워져 가는 길위에 그들의 보금자리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오는 듯 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omment +14

  • 감동적인 글, 잘 읽고 갑니다.

  • 아... 또 가을바람 한켠에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 Padfoot 2008.09.26 01:51 신고

    갑자기 차가워진 가을바람결에
    순수한 사랑의 향기가 묻어오는 듯 합니다.ㅎㅎ
    예쁜 사랑으로 얻은 사랑스런 아기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족 모습이 연상되네요.

    오랫만에 올리신 글..
    역시 감동이네요.^^*

  • 2008.09.26 01:54

    비밀댓글입니다

  • 역시 갯츠비님의 글입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
    마음만은 따뜻해지게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

    • 아 오랜만입니다. 요즘 제가 바쁜 핑계로 글도 못올리고 있네요. 갑자기 추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 선선한 바람이 가끔은 차갑게 느껴지는 가을이네요.
    한 켠으로 밀어둔 추억들을 하나 둘 씩 꺼내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이지요.
    감성이 이성을 앞지르는 날 한 번 잡아봐야 겠습니다^^

    • 네. 밝은저녁님 방문 감사합니다. 환절기라 제가 감기에 걸려서 요즘 고생하고 있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 Favicon of http://henjjang.com BlogIcon 2008.10.01 23:35 신고

    아.. 첨엔 그저 그런 사랑얘기일줄알았어요.. 그래도 혹시나해서 읽어보았는데..
    맘이 너무 아프네요.... ㅠㅠ 처음 님의 글을 읽어보았는데,.
    글솜씨도 좋은거 같네요.. 암튼. 안타까움도 크지만 그래도 좌절이 희망으로 바뀌었다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


세상의 풍경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다양한 색깔을 가진다.
그러한 다양함이 모여서 비슷한 색깔을 내게 되고, 우리는 그 공통된 색깔을 보면서 유대감을 느낀다.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내딛던 날 아침.
고단한 밤을 보낸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겁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사람들의 운동복이 산뜻했다.
이른 아침, 상큼한 공기와 함께 운동복 차림으로 도로를 쓸고 있는 한 아저씨를 보았다.

유난히 까만 피부에 짤막한 키의 아저씨는 도로를 정성껏 쓸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수 있는 흔한 아침의 풍경이지만, 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멀리서 큰 도로를 쓸고 오는 청소부 아저씨에게 시원한 물한잔을 건내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미 익숙한 상황인듯 물을 건내는 아저씨도, 받아 쥐는 청소부 아저씨의 모습도 무척 자연스러웠다.
열대야가 남아있던 한여름의 아침, 건네주는 물한잔이 정말 시원해 보였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지나치던 내 눈에 띄인 것은 작은슈퍼마켓에서 뛰어나온 한 아이의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는 낯설지 않는데, 아이의 외모는 무척 달라 보였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던 아이의 모습은 분명 어딘가 달랐다.
아이의 뒤를 따라 나온 아이엄마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알수 있었다.
엄마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 보였다.
아이는 동남아 쪽의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가진 아이였다.

이제 주변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모습이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는 빤히 바라보던 나를 눈치챘는지  나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언른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서둘렀다.
분명 똑같은 언어를 쓰고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일 것인데, 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뭔가 다름을 느꼈다.
그리고 그 눈빛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지고 아이는 경계의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 준호가 외치던 대한민국~!"


출근과 퇴근을 하면서 아이의 작은 슈퍼마켓에 들러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그러한 모습이 익숙해 졌다. 하지만 아이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늘 혼자 였다. 또래 아이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아이는 좁은 가게 구석에 앉아 TV를 보거나 가게 앞에서 거리를 바라보는게 다였다. 한국말도 또렷하게 잘하고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메고 다녔지만 아이는 늘 외로워 보였다.  그 외로움은 처음 만났을때 웬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올림픽이 끝나갈 무렵, 우리나라와 쿠바가 금메달을 놓고 야구 시합을 벌였다.
퇴근해서 돌아오는 길 한산했다. 걸어가는 길목마다 응원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메달 이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막 아이의 가게를 지나가던 그때였다. 갑자기 아이가 뛰쳐 나오며 소리쳤다.

"금메달이다~ 금메달~!!"

아이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며, 자리에서 마구 뛰었다. 뒤이어 아이의 아버지가 새까만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치며 함께 나왔다. 아이의 아버지와 아이는 서로 부둥켜 안고 난리였다. 아이의 엄마는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언가 함께 기뻐할수 있다는 것이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던 그 아이도 평범한 우리의 아이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아이인 것이다.

아이의 눈망울에서 기쁨과 희열을 보았다.
아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느끼고 있었다.
순간 아이와의 첫만남에서 느껴지던 이질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생각한 내가 몹시 부끄러워 졌다. 이 아이만큼 기뻐하지 못했던 내가 몹시도 부끄러웠다.
아이 역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당당한 우리나라 사람인것을, 왜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던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손뼉을 치는 아이를 보며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제 씩씩한 준호를 보면 인사를 한다. 아이 역시 경계심을 풀고 베시시 웃으며 또렷한 우리말로 인사를 한다. 아침마다 청소부 아저씨에게 시원한 물을 건내주는 아버지와 늘 미소를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준호는 인사성도 밝고 착하다. 아이는 여느 이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나의 이웃이 되었다

단지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다른것은 아니다.
낯선 풍경은 멀리서 볼때는 이해할 수 없다. 함께 사랑가는 사람들이 조금 다르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채 차가운 시선을 받았을 준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나 또한 차가운 시선의 하나였음을 깨닫고 부끄러워 진다.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까운 풍경속으로 뛰어 들어갈 때 익숙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젠 준호의 눈빛이 낯설지 않다. 준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omment +6

  • Favicon of http://blueclover.tistory.com BlogIcon 2008.09.06 08:54 신고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이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그들의 여전히 '외부인'으로 단정짓습니다.
    결혼이민자의 자녀는 '외부인'과 '우리' 사이에 위태롭게 서있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상처가 아이들을 괴롭히게 되겠죠.
    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국적과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과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준호도 '우리'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혈연이 어찌 되던, 우리 말을 하고 우리 땅에서 함께 부대끼는, 대한민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 예.그렇죠 주변에도 다문화가정이 많더군요. 이젠 익숙해져야 겠습니다. 아직도 사회적 시선은 차별이 있는게 사실이죠. 그래서 저부터 바꿔보자고 생각합니다.

  • 인종차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물론 아니지만 미국에선 분명 다양한 인종과 출신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어서 편하고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미국 사람을 만났을때 아버지는 폴란드계 독일인이 이민한 세대이고 어머니는 또 중국계와 아일랜드계가 섞였다느니 뭐라뭐라 하면서 복잡한 가족사를 자연스럽게 늘어놓을 때 보면 정말 우리가 목숨같이 여기는 단일민족이란게 뭔가도 싶고.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오는데는 200년 이상의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잖아요.
    우리나라에 다문화 가정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게 이제 한 십년 조금 넘었나요?
    한국인의 정이라면 미국사람들 보다 훨씬 빨리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믿어요^^

    • 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역사를 보더라도 인종과 다름에 대한 차별은 있어왔죠. 우리는 단일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것이지 다른게 아니라는것을 생각해 봅니다.^^

  • Kate 2008.09.06 23:25 신고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이방인으로 취급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때마다 문득 느끼게 되는 이질감, 소외감은 결코 유쾌하지 않죠.
    한국 국민들의 의식이 폐쇄적인 단일민족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서 이런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에 적응하려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겠죠.

    • 성숙한 사회라는것이, 이런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다른게 나쁜게 아니라는것을 알고 미리 배려해줄수 있는 사회겠죠.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보여지네요. 언젠가 한 혼혈인 가수의 어려웠던 젊은 시절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는데요, 그 시대의 시선이 아직도 그래도 남아있는것 같아요.^^


우리의 기억에는 익숙한 풍경이 있고, 그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익숙한 풍경에 대한 기억은 잠시 시간을 정지 시켜 놓고, 그 속에서 아련한 무언가를 찾게 만든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불현듯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추억은 돌아올수 없는 허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길에 소중한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건빵 할머니와 커피 할아버지

어릴적 살던 동네의 기억은 선명하다. 비록 지금은 재개발 때문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서 에전의 모습은 전혀 찾을수 없지만, 그때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만은 뚜렷하다.

어울려 살아갈줄 알았던 그 시절, 대문과 대문 사이에 나 있는 골목길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함과 기쁨이 함께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은 내 어린시절의 소중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양쪽으로 집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따라 내려 가면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슈퍼마켓 앞에는 그늘진 평상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오고 가며 앉았다가곤 했다. 지금은 기억속에서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내지만, 당시에는 바쁜 삶을 보내는 사람들의 힘겨운 발걸음을 잠시 머물게 해주는 휴식처 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점심시간이 지난 후, 큰 길을 따라 할머니 한분이 내려오셨다. 할머니의 손에는 건빵 한봉지가 들려있었고, 할머니를 따라 동네 강아지들이 몰려 들어 꼬리를 흔들어댔다. 할머니는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강아지 한 마리 한 마리 마다 머리를 쓰다듬고는, 건빵 봉지를 열어서 하나씩 입에 물려주곤 했다. 걸어서 10분도 안걸리는 거리를 할머니는 일일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30분이 넘게 걸려 내려오셨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걸어서 내려오신 할머니는 슈퍼마켓앞 평상에 앉아 힘든 숨을 몰아 쉬셨다. 그럴때면 슈퍼마켓에서는 어김없이 비슷한 나이의 할아버지 한분이 나와 옆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할머니 손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쥐어 주셨다. 그리고는 걸어온 길을 서로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내 움직이지 않는 풍경이 되어 오래오래 그들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의지할곳 없이 늙어 버린 할머니는 베풀곳 없는 사랑을 거리의 강아지들에게 나눠주었고, 사랑이 그리운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오기를 매일 같이 기다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걸어온 길을 함께 보며 지나간 기억들을 되살렸고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이 풍경은 수십년이 지나 불현듯 내 기억속에서 되살아 났다.

때론 바쁜 일상은 핑계가 되어 지나간 추억 마저 사치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지난 기억속에 있던 소중한 풍경의 모습을 깨닫는것도 쉽지 않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 고민하고 방황하며 기뻐하며 감사한다. 이렇듯 사랑은 우리의 삶에 있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낡은 사진첩을 꺼내어 어릴적 동네의 모습을 내려다 본다. 사진속 친구들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사진속에서는 찾을수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속에는 오래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외롭다고 느낀다면, 사랑을 베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외로운것이 아니라 베풀지 못해서 외로운것이다.  경사진 길을 내려오며 자신을 반갑게 맞이 하는 강아지들에게 웃음을 보여주던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를 기다리며 따뜻하게 커피를 타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것 같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후에, 그들이 나누었던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것 같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준호가 외치는 대한민국~!  (6) 2008.09.06
건빵 할머니와 커피 할아버지.  (12) 2008.08.24
감자골, 열두살 수진이를 보다.  (10) 2008.08.05
교도소 가는길..  (10) 2008.07.18

Comment +12

  • 김정민 2008.08.24 17:30 신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듯 합니다.
    사랑과 행복이라는 말의 참뜻이... 어떤 것인지
    오늘 한번 생각해보렵니다.
    따뜻한 글 가슴에 담고 갑니다...^^

    • 네. 불현듯 그런 기억들이 나타나더군요. 사랑과 행복이라는것이 우리 주위에도 참 많이 있죠. 방문 감사합니다.^^

  • 복부인 2008.08.24 17:43 신고

    제목에 눈길이 끌려 왔다 갑니다.
    또한 이미지 사진 마음에 와 닿는군요. 얼마아니 있으면 나도 여기 있는 이미지의
    모델 ? 되여 누군가의 카메라의 한컷이 되는 영광 ? 이 될지도 모른다 하며
    연륜이 싸인 두분의 모습이 정 겹습니다.

    •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참 보기 좋죠.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풋향기 2008.08.24 18:44 신고

    이사진 보니까 얼마전 tv에서 본 중국집 노부부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점심시간에만 파는 자장면과 노부부두분의 모습 ㅎㅎ 장사도 내맘이고 문닫는것도 내맘이라는 마인드가 어떻게 보면 부럽기도 하더군요

    • 네.^^ 행복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늘 여유와 미소가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비교만 하다 보니 세상사는 것이 팍팍한것 같기도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K. 2008.08.24 20:37 신고

    어떻게 전개될 지도, 그 끝도 알 수 없는 인생행로에...
    정겹게 손잡고 함께 갈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구부정한 모습에 굼뜬 행동이겠지만, 건빵을 나누어 주시는 할머니와 커피 한잔 건네시는 할아버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두 분의 행복한 얼굴을 떠올려 보고 있는 지금,
    그 모습을 한 풍경으로 제 마음 속에 살며시 간직해 봅니다,

    • 사진으로도 남길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릴적 무신코 봐두었던 장면이 오랜시간을 거쳐서 새로운 감정으로 되살아 나는것을 보면, 그때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 Padfoot 2008.08.24 20:42 신고

    아, 지금 보니, 다음 블로거뉴스 베스트 종합 2위네요. ** ㅊㅋㅊㅋ **

    제가 특히 좋아하는 '사는 이야기' 글을 다른 분들도 많이 읽으시니 기분이 좋네요.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ㅎㅎ
    즐거운 주말 보내셨습니까? ^^

  • 또 가슴한켠이 뭉클해져요..^-^
    다른말이 떠오르질 않아요~^^;


강원도 소도시.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바라본 한적한  풍경은 휴식과 정겨움이었다.
사람 살아가는 것이 크게 다르진 않을텐데, 어떤 곳에서는 지독한 외로움에 젖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낯선 풍경도 포근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긴 시간을 달려온 나를 시원한 바람이 맞이한다.

대화조차 쉽지 않던 외로움을 버리고, 스스로 감자골이라 말하는 이곳에 정착했다는 녀석이 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왔다. 삼십대 중반의 노총각.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녀야 하는 나그네 인생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 보는 것이 다르면, 마음도 달라질까? "
 
녀석이 서울을 떠나기전에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녀석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한다. 까맣게 그을린 녀석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함께 겹쳐진다. 예고없는 방문이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이다.

고즈넉한 풍경과 어울려 살아가는 녀석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녀석이 둥지를 튼곳은 민박과 펜션의 모호한 경계속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휴양지. 푸른 녹음과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면서 엄숙하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사색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시골냄새 가득한 뒤뜰에 모기향을 피워놓고 함께 앉아 같은 곳을 바라 본다. 녀석의 흰머리가 유독 눈에 띈다.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편안하다고 한다. 이렇게 삼십대를 훌쩍 넘겨버린 두 사람은 소소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줄 모른다.

열두살 수진이.

사람사는 동네의 인심이 그러하듯, 넉넉한 마음을 가진 주인 아저씨가 시원한 수박을 가져다 주신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이방인을 대할 때 수줍은 표정을 살짝 보인다. 그 순박한 미소를 보며 어릴적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손주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크셔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던 손길을 느껴본다.

덩치만 큰 펜션에는 주인 할아버지와 손녀 수진이, 그리고 녀석이 살고 있다. 늦게 결혼해 딸만 하나 두셨던 할아버지는 꽤 오래전에 밭을 갈아엎고 펜션을 지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허리 때문에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이후, 밭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한때는 결혼한 딸과 사위가 함께 어울려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성실한 사위를 둔 덕분에 벌이도 제법 괜찮았다고 한다. 그리고 손녀 수진이가 태어나면서 세상이 무척 행복했다고 한다.

행복한 시골 마을에 갑작스러운 사고가 찾아 왔다. 사위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게 되고 모든 것이 급하게 변해갔다. 외동딸은 수년간 힘들어 하다가 어느날 집을 나갔다고 했다. 서른살, 그 젊은 시절에 바라보는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서울 어느 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 온다고 한다. 다섯 살 어린 수진이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른 새벽에 느껴지는 공기가 차갑다. 그 신선하고도 차가운 공기에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학인데도 열두살 수진이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 내 친구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는 표정에 구김살은 찾아 볼수 없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에 녀석은 미소로 화답한다. 그렇게 웃음소리와 함께 감자골의 아침은 시작되고 있었다.

" 딸 이라고 해도 믿겠다. "

뜬금없는 내 농담에 녀석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옆에 있는 수진이가 녀석의 얼굴을 쳐다 보며 함께 웃는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터인데 둘의 모습은 어디엔가 닮아 있다.

" 딸 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녀석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녀석의 손을 잡고 있는 수진이가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피 한번 섞인 적이 없는 둘은 그렇게 가족같은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손님으로 찾아온 중년 부부가 아침부터 산행길을 재촉한다. 녀석은 밤새 얼려놓았던 시원한 보리차를 건네준다. 열두살 수진이는 옆에서 수건을 챙겨준다. 둘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잘 다녀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합창을 만들어 낸다.

시골의 아침밥상은 단촐하지만 맛이 있다. 재철 음식과 구수한 밥냄새가 마냥 좋기만 하다. 아침을 먹는동안에도 웃음은 떠나질 않는다. 주인과 종업원의 사이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식같은 대화가 오고간다. 밥을 먹고 서둘러 일을 떠나는 녀석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하루에 두가지 일을 해야만 하는 녀석이 안스럽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고맙다. 인사성 밝은 수진이의 마중을 받으며 집으로 가기 위해 돌아섰다. 낯설었지만 정겹게 느껴졌던 첫인상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라고 생각해 본다.

풍경은, 늘 그 속에 속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빛깔을 가진다. 그래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함께 기대어 살아가는 풍경은 늘 정겨운 빛깔을 가진다.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을 미소짓게 만든다.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슬픈 일이다. 버림 받은 것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 열두살 수진이의 밝은 미소를 생각해 본다. 미움도 슬픔도 당장 이해하기 쉽지 않으면 잠시 잊고 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 것 같다. 열두살 수진이를 통해서 하나를 배운다.

도심을 벗어난 녀석의 미소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본다. 절망하며 살기엔 너무 젋다는 것을 녀석의 힘찬 발걸음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지금 가는 길이 고통과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걸어야 할 길이라면 걸어야 할 것이다. 그 경사진 오르막을 힘들게 걸어 오르는 녀석의 삶에 대한 열정에 또 하나를 배운다.

[관련글] : 2008/07/14 - [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 친구, 가리워진길을 보다.

우리가 함께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 같다. 욕심없이 마주보며 웃을수 있는 것.
비단 가족이라는 선천적 울타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서로 의지하며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조용한 시골 풍경속에 오늘도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삶의 진한 향기를 만들어 내는 곳. 감자골 다녀오는 길, 그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 사는 법을 배워 본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빵 할머니와 커피 할아버지.  (12) 2008.08.24
감자골, 열두살 수진이를 보다.  (10) 2008.08.05
교도소 가는길..  (10) 2008.07.18
짠돌이와 6만원  (16) 2008.07.16

Comment +10

  • 2008.08.05 17:16

    비밀댓글입니다

    •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사랑이 되는거겠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삶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면 마음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비극은 희극을 위해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죠. 버려야할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것 같습니다.^^

  • 저도 저런 천진난만함이 그리워요. ㅎ

  • Kate 2008.08.05 22:18 신고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는 아니지만,
    이 분들의 정겹고 따뜻한 관계는 그 어떤 가족애보다 더 진하게 느껴지네요.^^*

    • 가끔은 그런 생각도듭니다. 원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려울수도 있겠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게 참 많은것 같아요.

  • 화려한 미사어구들이 필요할까요?

    이글을 읽는 순간...
    이미 제 가슴속에 따뜻함이 느껴져오는데...

    사람사는게 이런거겠죠? ^^

  • JJames 2008.08.09 15:03 신고

    따뜻한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면 마음도 달라진다, 결국 삶이란 버린 욕심만큼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 같군요.
    그 깨달음만큼 진실된 삶을 살게 되는거구요.

    • 네 jjames님 방문 감사합니다. 아웅다웅 살아가는 지금 모습이 올바른 풍경이 아닐수도 있죠. 가끔 살면서 다른 풍경을 보며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인도가 없는 도로.
노란색 중앙선이 선명하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아 한적한 시골풍경을 그려내는 곳, 그 언덕위 회색건물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터벅터벅 걸어올라 가는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아마도 이 고요한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회색건물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리라. 많은 면회객들이 한숨과 슬픔을 안고 걸었을 이 길.
바로 교도소 가는 길이다.

기억 하나.

   기억은 선후배의 끈끈한 정속에서 우정에 취하던 대학시절로 돌아간다. 당시에는 여럿이 함께 자취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의 경우 고향 선후배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친구와 방이 몇개달린 좀 넓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새로운 신입생이 고향 후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 덕분에 고단한 설거지 담당은 물려 줄수 있게 되었다.

   과는 달랐지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부쩍 친해졌다. 후배는 나보다 내 친구를 더 좋아하긴 했지만 쾌활하고 말주변이 좋은 후배가 밉진 않았다. 후배는 호기심이 많고 붙임성이 많아서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집에 늦게 들어갈 때에는 걱정이 되어서 삐삐 까지 쳐주는 정이 많은 후배였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을 함께 살았다.

기억 둘.

   녀석에게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호기심이 참 많아서 궁금한 것은 꼭 확인해야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이것이 과해서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사실을 약간 과장하는 버릇도 가지고 있었다.  계란후라이에 구연산을 소금과 같이 넣어서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다고 우기는 바람에 실험을 했다가 속이 뒤집어 진 적도 있었고, 맥주를 먹고 물구나무를 서면 배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따라했다가 구토를 심하게 한 적도 있다. 번번히 속았지만 녀석의 말을 들으면 꽤 그럴 듯 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어이없는 웃음으로 기억되는 자취생활의 기억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서로 흩어졌다. 후배는 학업을 계속 했고 친구와 나는 사회로 뛰어 들었다. 짐을 꾸릴땐 자주 만날 것 같던, 헤어지면 못살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만나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들고, 전화하는 것도 뜸해졌다. 그러다가 언제 부턴가 연락을 하질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 갔다.

잘못된 길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는 반가웠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 가끔 전화안부는 묻곤 하지만 친구의 목소리는 늘 반갑다. 간단한 안부인사를 하고 난후에 친구가 내게 들려준 말은 좀 충격적이었다. 밝고 명랑하던 녀석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으니 면회를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만에 후배와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후배녀석은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여러 가지 일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다. 워낙 말솜씨가 좋고 붙임성이 좋아서인지 졸업하기 전에 이미 취업이 되었다고 한다. 주위에서는 다단계 회사라서 만류가 있엇지만 녀석은 말을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과 호기심이 선택한 잘못된 길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만원짜리 양말을 팔고, 수십만원짜리 전기요를 팔러 다녔다고 한다. 그것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판매를 했던 것 같다. 지방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와 친구에게 그런 적은 없었다. 그런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난 것 같다. 다단계 사업은 이렇게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

   그곳에서 녀석이 무엇을 배웠는지는 짐작할 만 하다. 그래서 녀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벌이고 말았다. 스스로 다단계 회사를 창업 했는데  돈을 내고 몇 달뒤에 몇배의 이익을 내준다는 투자사기회사였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아마도 자신의 언변과 설득 능력을 자신했고, 정작 그 쓰임새가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으로 후배 녀석은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교도소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몇 년 만에 본 후배는 분명 변해 있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빛나던 눈빛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었다. 면회 시간동안 녀석이 한 것은 자신의 사업에 대한 변명과 억울함 이었다. 눈빛은 욕심의 배를 채우지 못한자의 한없는 미련이었다. 그래서인지 면회객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수년전 헤어졌던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후배의 그런면을 모르고 나에게 전화를 한 친구가 미안함에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기대한 것은 원인이 어찌되었건 반성의 모습이었고, 지난시간의 좋은 기억에 대한 회상 이었다. 죄값을 받고 바른 길을 가겠다는 약속 이었다. 그래서 진한 추억을 함께 만든 선후배간의 끈끈한 관심이 이어지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더 추악한 미래를 생각하는 눈빛 이었다. 그것은 배신감을 넘어선 또다른 충격이었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함께 웃는다면, 그것이 부자가 되는길이라고 후배에게 말해주었다. 녀석이 귀담아 듣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녀석에게 해줄수 있는 말의 전부다. 그 이후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면회소를 떠날 때 그 흔한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다. 헛된 욕심과 거짓으로 뭉쳐진 그 눈빛에 무슨 말을 할 수있으랴.
 
   살다 보면 우리는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낄 땐 당황스럽다. 어느 것이 본 모습일까 라는 의문이 들면 좋았던 기억들은 모두 사라진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변하고 있고 사람에게 느껴지는 향기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익숙한 사람에게 예전에 느꼈던 향기가 없어지고 악취가 풍기면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다. 교도소로 가는 길에 시원했던 바람이, 나오는 길에는 숨이 턱 막힐정도로 더운 바람이 된다.  그 길 위에서 내가 사랑했던 한 사람을 잃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골, 열두살 수진이를 보다.  (10) 2008.08.05
교도소 가는길..  (10) 2008.07.18
짠돌이와 6만원  (16) 2008.07.16
친구, 가리워진길을 보다.  (12) 2008.07.14

Comment +10

  • 안타까워요...
    그 후배가 가졌던 좋은 능력들을 좋은곳에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네요...

    사람의 욕심엔 그 끝이 없다잖아요~
    그 욕심이라는걸 내의지와 노력만으로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신선이 되지 않았을까...^^;

    선후배간의 좋았던 기억의 끈을 손에서 놓아버리는 그 심정은 이루다 글로 표현할 수 없겠지요...

    • 네. 아쉬움도 돌아올것이라는 생각이 있을때나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좋은 능력을 다른곳에 썼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네요. 사람을 만나는것이 어려운것처럼 잊는 것도 큰 고통인것 같아요.^^

  • 굉장히 잼난 후배분... 너무 아쉽네요... ㅠㅠ

  • 핑키 2008.07.18 17:23 신고

    저기 들어가는 심정은 어떨까 참..궁금하네여

    • 면회를 간 저도 그리 유쾌하진 않더군요.. 웃는 얼굴로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 Kate 2008.07.19 07:32 신고

    호기심 많고 엉뚱한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지던 후배가
    잘못된 선택으로 전혀 다른 모습, 사람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Gatsby님의 아픔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 아쉽기도 하면서 동시에 무섭네요
    하나의 재능이 경우에 따라서 대단한 장점이 되기도 하고 또 반대로 될 수도 있구요

    여러가지 이유로
    요즘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젤로 무섭더라구요

    • 그런가 봅니다. 천천히 길을 걸어도 될것을 빨리 걷다 보면 늘 욕심이 생기나 봐요. 사람을 잊는다는게 쉽지 않은가 봐요, 늘 아쉬움만 남네요.^^


2천원

함께 일하는 직원중에 짠돌이가 한명 있다.
구두쇠와 짠돌이는 가급적 멀리 하라던 인생선배의 조언이 있었지만, 이 짠돌이는 지방 출장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눈총은 받지만 맡은 업무만큼은 정말 꼼꼼하게 잘 해낸다.

회식이 있으면 늘 1차에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개별적으로 이차나 삼차까지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1차 회식비용은 공식비용이 되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것은 개인 지갑에서 각출을 한다.

이 짠돌이는 결단코 지갑을 연적이 한번도 없다. 술을 과하게 마신 날이면 택시비가 없다며 가장 만만한 내 지갑을 털어 간적도 제법 있다. 몇 년을 같이 지냈지만 짠돌이의 지갑색깔이 무슨 색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함께 지방출장을 오게 되면 아무래도 근무 시간이 좀 널널하다. 특히 장기 출장의 경우에는회사생활에서 맛보지 못한 늦잠과 게으름도 공식적인 기록에 남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짠돌이가 이발을 하고 왔다. 그리고선 오후 내내 투덜거린다. 이발비용이 2천원이나 올랐다는 것이다. 그게 무척 속상하고 억울한 것 같다.

투덜거리는 것이 듣기 싫어 2천원을 꺼내서 짠돌이에게 내밀었다. 그만좀 투덜거리라는 나의 의사표시이자, 직장 상사로서 무안함을 느끼라는 일종의 압력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냉큼 2천원을 받아서 챙긴다. 내가 좀 더 근엄하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못한 것을 두고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내 돈 2천원... 아깝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짠돌이와 6만원.

마침 급여 명세표가 우편으로 날라 왔다. 보통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2천원을 빼앗겨 심뽀가 고약해진 나는 부하직원의 급여명세표를 보고 말았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의 명세표를 본다는 것이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다. 보통 급여명세표에서 공제란을 유심히 보는데, 녀석의 공제란에 특이한 사항이 하나 있었다. 특별한 지출 60,000원.

몇 년전에 회사에서 어떤 계기로 불우이웃 돕기같은 성금을 모금한 적이 있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정기적인 기부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의견이 분분해서 적극적인 의사를 가진 사람만 급여에서 빼기로 한 것이다. 사실 호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매월 60,000원이라는 돈이 급여생활자에게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첫 달에 신청한 사람이 절반 정도 밖에 안되었고, 달이 갈수록 사람은 점점 줄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별다른 관심도 없고 기부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짠돌이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매월 60,000원의 돈을 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의 막내임에도 노모를 홀로 모시고 산다는 짠돌이 였기에 좀 의아스러웠다. 꼼꼼한 그가 공제금액을 모를 리는 없었다. 급여명세표를 전해주면서 회사에서 기부했던 것에 대해서 슬쩍 물어 보았다.

“뭐 60,000원 없어도 전 잘 살거든요. 그때 처음 도왔던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잖아요. 요즘도 점심 굶는 아이가 있다는게 좀 우습지 않아요?”

이 짠돌이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급여명세표를 받더니 지난달 보다 보험료가 2,700원 더 나왔다면서 본사에 전화를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를 고민한다. 짠돌이는 이래서 미워할 수 없나 보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대부분 우리는 그 풍경에 갇혀 살아가면서 세밀하게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정작 베품에는 인색하면서 보이는 면이 마음에 안든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베풀줄 아는 사람은 그 풍경속에서 늘 당당하고 아름답다.

내가 저녁을 산다고 이야기 하자 짠돌이는 고기 먹은지가 좀 오래되었다며 눈치를 본다. 그래도 오늘은 참 이뻐 보인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도소 가는길..  (10) 2008.07.18
짠돌이와 6만원  (16) 2008.07.16
친구, 가리워진길을 보다.  (12) 2008.07.14
비가오는 길에 마흔아홉살 고아를 만나다.  (28) 2008.06.19

Comment +16

  •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평범하게 우리곁에 있으니
    그래도 아직 세상이 살만한거 아닐까요.

    그런데;;
    추천버튼이 실종됐어요 ㅠㅠ 추천한방 쏘고 싶은데.....

    아참, 이 좋은 글 밑에 구글광고에 '야한영화' '성인영화'를 보니
    기분이 참;;;
    요새 구글도 광고를 좀 막하나봐요~

    • 둘러보면 아름다운 실천을 하는 사람도 참 많죠.. 예약 포스팅이라 그런지 추천버튼이 안붙는것 같아요.ㅋ 아 그리고 구글광고가 그리 나왔나요? 구글광고 없앴습니다.^^

  • K. 2008.07.17 00:46 신고

    의외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곳이 많더군요.
    한 후배도 구청에서 결손가정을 소개받아서
    방문도 하고 바쁠 때는
    수시로 필요한 물품도 배달시키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도 그 후배가 참 예뻐 보였답니다.

    Gatsby님, 짠돌이 직원에게 밥 자주 사고 계시죠? ㅋ

    • 네. 내색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모습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때 참 아름답죠. 그래서 함께 사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인것 같아요. 그날 고기값이 10만원 넘게 나왔다죠.ㅜ.ㅠ

  • 그래도.. 그 구두쇠가 나중에 잘 살걸요.. ㅎㅎㅎ

  • K 동생 2008.07.17 10:24 신고

    제가 K가 말한 동생인데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데 언니가 칭찬을 했네요..
    하지만 우리 주위에 너무나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거는 사실입니다.
    혼자서 하기 보다는 작은 힘이나마 여럿이 동참하면서 도와주면 훨씬 오래할 수 있지요...
    남을 돕다 보면 자신이 행복해지고 내 욕심이 많이 줄어들어요..
    아이들에게도 남을 돕는다는 것을 자연스레 가르쳐 줄수 있구요...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입니다... 주위에 어려운 사람 있으면 한번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 남에게 베풀줄 아는 것이야 말로, 진정 자신의 가치를 이해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어느 스님의 말씀이 기억 납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K님 동생이이라면 L님이나 M님 혹은 N님 이겠군요.^^ 방문 감사합니다.

  • 2008.07.17 14:38

    비밀댓글입니다

  • 늘... 사람만이 희망이예요..^^
    금요일 아침부터 뭉클해지네요~~

    오늘하루도 기분좋게~~ 시작하세요!!

    • 사람이 희망이죠.^^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행복할수 있는 가장 좋은길인것 같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짠돌이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잘 구분하고 써야겠습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그렇죠. 소신이라는 것이 이 짠돌이에게도 분명히 있다는걸 느꼈네요. 소소한 삶의 지혜로움에 늘 감탄하고 삽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 반전이 있었군요
    삶에서 이런 반전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하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여 까지 반전을 목격하지 못했네요
    내가 보고 들은 짠돌이들을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는 이기주의자들 뿐이었습니다 ㅠ.ㅠ

    • 인간은 참 미묘한 감정에 의해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는것 같아요. 사람마다 모르는 내면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편견을 만드는것은 아닌지 반성하기도 합니다.^^